또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정신 잃지 않으려고 요즘 읽는 책은 <영국에서 사흘 프랑스에서 나흘>이다. 1/3 정도 읽고 있다. 



1. 성향과 만족


본래 모바일 게임을 만드는 회사였던 곳이 사업 종목을 바꿔 IT 기반 O2O 회사가 된 곳에 입사했다. 사무실은 판교다. 마케팅 팀 일을 하러 들어왔지만 전혀 성격에 맞지 않아 결국 팀을 전반적으로 아우르는 '프로젝트 매니저'와 비슷한 일을 맡고 있다. 확실히 이 영역을 맡기 전 보다 고민도 많이 줄고 재미도 늘었다. 그리고 이 일이 어쩌면 나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렬적인 시간 구조를 떠올리는 습관이나 한 분야보다 여러 분야에 걸쳐 다양한 것을 흡수하는 것, 구조적으로 사고 할 수 있는 의사소통 방식이 그렇다. 


사실, 고등학교-대학교를 거치면서 나는 한 번도 소속에 푹 빠져 본 적이 없다. 영상도 디자인도, 모두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주변 환경은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자연스레 그 쪽으로 시선이 반고정 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아주 그 분야들을 배척할 정도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두 분야 모두 내가 선택한 곳이었고 실제 지금도 관심은 있다. 다만, 이제는 시청자 내지 독자로 그 위치를 바꾼 것 뿐이다. 두 분야 모두 지금 이 상태로 접할 때, 가장 좋은 관계다. 그 분야에서 왜 그토록 자리에 앉지 못하고 서있던 이유를 고백하면, 그 선택에 앞서기 전 항상 이 분야를 공부할 때의 내 모습보다는 이 분야를 안 이후에 내 모습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 분야를 공부해서가 아니라 그 분야를 공부했기 때문에, 여러 많은 시선을 획득할 수 있는, 일종의 나의 "지적허영심"으로부터 시작된 욕망이기 때문이다. 


"욕망"은 서서히, 천천히 그렇데 삶을 바짝 감싸기 시작했다. 나이 든 사람들이 "내가 그때 그걸 공부했더라면 어쩌구 저쩌구" 과거로 돌아가서 또 다른 선택을 했을 경우를 말할 때가 왕왕 있다. 그때로 돌아가면 또 같은 선택을 할텐데도 불구하고 이미 지나가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의 순간을 다시 떠올리는 것을 보며,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합리화에 젖은 생물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나도 그런 생물이다. 영상과 디자인(엄밀히 말하면 영화와 그래픽 디자인)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사학과"를 갔을 것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이래나 저래나 돈 못 버는 분야다)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것을 놓고 봤을 때 이미 선택한 분야와 선택하고 싶었던 분야는, 극과 극이다. 그래서 영상, 디자인을 공부하면서도 소재는 언제나 "그 분야"에서 찾았고 수업 과목 중에서도 "그 분야"와 관련된 수업이 있을 때 가장 즐거웠다. 왜 하필 그 분야에 흥미가 돋냐고 묻는다면, 언제나 과거로 돌아가 과거 속에 머물며 끊임없이 새로운 사실을 발굴 할 수 있고, 여러 시간대를 병렬적으로 두고 판단할 수도 있으며, 시간의 흐름을 한눈에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문화재 해설사"로 일하겠다는 생각도 예전부터 품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욕구를 현재 독서를 통해 메꾸는 중이다. 감히 그 분야에 정통한 사람들과 비교할 순 없지만, 목표는, 꾸준히 오랫동안 습관을 들여 계속 관심을 놓치지 않는 것에 있다. 


지금 맡고 있는 업무가 이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그 어떤 일보다도 흥미롭다. 일정을 맞추고 각 팀에 상황들을 알기 위해 의사소통 하면서 자연스레 공부가 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독서로만 간접 경험이 일어나는 줄 알았는데 일을 하면서도 그게 가능했다. 





2. 감정과 공감


"너는 감정에 공감을 잘 못하는 것 같아"


이런 말을 들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충격이었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정말 그렇긴 했다. 이렇게 말하면 심리적으로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비춰질까해서, 내 생각을 정리하기로 했다.


사실 이 말을 얼마전에 남자친구한테 똑같이 한 적이 있다. 앞에 "너"가 "오빠"인 것만 빼면 말이다. 그때 내가 이런 말을 한 이유는 그가 매우 "이성적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야기를 했을 때 그는 객관적인 사실을 나열하고 그 사실 속에서 새로운 정보를 찾아낸 다음, 그 문장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는 식으로 이야기 한다. 굳이 감정이 들어갈 자리가 없을 뿐더러 있다고 하더라도 우선 사실이나 정보를 기초로 해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런데, 그 대화 구조를 나도 똑같이 갖고 있다는 것을 최근에 친구들과 이야기 하며 깨달았다. 그런데 놀라운 건 나는 감정기복이 타고난 전형적인 감정형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적어도 혼자 집에 머물 때나 혼자만의 시간에 빠져있을 땐 그렇다. 하지만 사람들과 이야기 할 땐 내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이것도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다) 왜 이렇게 이중적인 모습을 갖게 된 걸까. 


내가 감정 중심형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 3년 연애한 사람과 헤어지고 울며불며 매달리며 1년 반을 고생한 것? 아니면 집에 들어와 혼자 방 안에 이불 뒤집어 쓰고 우는 날이 많았던 것? 권나무가 쓴 노랫말이 너무 슬퍼 길을 걷다 울 뻔 한 적? 함께한 강아지가 내 앞에서 죽을 때 계속 울었던 것? 그러고보니 나는 "슬픔" 감정에 특히 예민하다. "분노" "기쁨" 이런 것엔 또 둔하다. "기쁨"은 느끼지만, 언제 또, 그 기분이 사라질까 두려워 자제하는 마음이 크다. "분노"는 어차피 표현하고 나면 나만 되려 더 상처가 된다는 것을 알기에 자제하는 감정이다. 


특히 최근 2~3년 동안 독립, 이별, 죽음, 상실, 배신감에 젖을 만한 일이 많았다. 그것을 이겨내려면 스스로가 스스로를 다독여야 했다. 좋은 감정 표현을 했지만 나쁜 감정 표현으로 되돌아는 경우도 있었고 외로움을 저지하기 위해 더 마음을 단단하게 해야 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배신할 수 있다는 것을 안 뒤로 "인간적"인 관계보다 "사회적"인 관계가 차라리 편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부터는, 헤어짐이 두려워, 마음을 적게 주는 방식으로 바뀌어버렸다. 그 옛날 친구 생일 때마다 편지를 쓰던 나는 요새 어디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감정을 드러내서 오히려 아픈 경험이 자꾸 쌓이니깐, 애초에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도 모르는새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친구에게는 감정을 모두 드러낸다. 무슨 차인가 생각하니 남자친구 여자친구 이전에 그의 의사소통 구조나 생각 구조가 나와 많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서스럼없이 감정을 이야기하고, 심지어 설명할 수 있다. 비슷한 생각 구조를 가진 사람 이외에게 내 감정을 설명하는 것은 앞으로도 쭈욱 어려울거다.


그래서 소설을 더 열심히 읽어야한다. 감정을 느끼고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평소 현실에서 잘하지 못한 것들을 소설을 읽는 과정 속에서 해소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이 "완벽주의" 강박증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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