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하겠다고 했다. 두 대표님은 면담을 제안했고, 처음엔 J대표님과 그 후에 C대표님을 뵈었다. 그리고 두 대표님과 다함께 자리를 만들었다.
첫 직장에서 나올 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다. 1년 8개월을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관계를 이어갈 만한 사람들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향한 판단만큼은 타고난 냉정함이 있었기에, 지금도 그들의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다. 두 번째 직장을 나올 때는 대표 한 사람이 나를 비롯한 전체 직원 네 명을 갑자기, 동시에 해고 하는 바람에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그대로 회사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해고 된 네 명끼리 서로의 우산이 되어주려다가, 예상치 못한 관계가 드러나면서 뜻하지 않는 배신감으로 그들에게서 혼자 빠져나왔다.(하지만 최근 오해를 풀고 다시 만남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오늘도 그들을 만나러 간다) 세 번째 직장으로 맞은 곳이 지금의 회사다. 두 번째 직장에서 해고 된 지 거의 한 달 만에 들어가게 된 곳이었고 이전의 직장들에게서 보였던 단점들이 없는 곳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자본 상태가 좋지 않아 회사의 운명이 오늘, 내일 한다.
회사 재정 상태가 좋지 않다고 들은 것은 지난 4월 중순이었다. 이제 막 인턴 기간 3개월이 끝나가고 있었고 나는 이제 지난 상처를 딛고 다시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때였다. 하지만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마냥 견뎌야만 하는 건지, 이 상황들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 그에게 달려가 시나리오를 묻고 싶을 정도였다. 친구 2명과 방 세 칸 짜리 집을 구해 셰어하우스에서 살고 있고 왕복 60km가 넘는 통근 거리를 두 계절을 거치며 매일 오고 갔다. 모두 내가 선택한 것이었고 그것에 대해 책임을 다하고 싶었지만 몸과 마음이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29일이면 찾아오는 월세와 공과금을 내는 날, 출퇴근길 사방에 사람들로 막힌 지하철,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힘들었던 회사 내 유일하게 맞지 않던 한 사람(하필 사수였다). 그럼에도 견딜 수 있었던 건 일 하는 것이 재밌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하는 사람들이 좋았으며 내가 좋아하는 아이템으로 사업을 하고 있었고, 실제 매출도 어느 정도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출이 휘청거리고 모든 직원의 월급이 줄어들면서 애써 견디고 있던 힘이, 겉잡을 수 없이 빠지기 시작했다.
퇴사를 하겠다고 했다. 두 대표님은 면담을 제안했고, 처음엔 J대표님과 그 후에 C대표님을 뵈었다. 그리고 두 대표님과 다함께 자리를 만들었다.
J, C 공동 대표님들은, 대표가 아닌 대표님이라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로 인간적이고 자애로운 분들이다. 배신에 배신을 맞아서 몇 달 동안 쉽사리 사람을 신뢰하기가 어려운 상태였지만, 조금씩 이 회사에 대해 소속감을 가지게 된 여러 이유 중에 하나로 이 두 분의 언행과 태도, 생각이 있었다. 두 분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J 대표님은 기획자, C 대표님은 개발자이다. 눈물이 많고 감성적이지만 예리한 시선으로 의견을 내고 일을 진행하는 J 대표님, 사실을 바탕으로 현상을 이해하고 데이터를 쌓는 C대표님. 나는 두 분의 균형에 점차 매료되었다. 돈 버는 수완은 있지만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대표들만 보다 조리 있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그 의견을 구조적으로 정리해서 다음 단계로 이어갈 수 있는 지금의 두 대표님들의 모습을 보니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간의 태도가 무엇인 지 깨달았다. 다만,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회사의 리더로서 기존의 수완 좋은 사업가는 달리 이윤을 크게 내지 못하는 모습은 안타까웠다. 하지만 아직까지 나는 "돈 버는 것에 미쳐있는 리더"보다 "구성원을 모두 신경 쓰는 리더"가 좋다. 내가 자본 중심형 인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퇴사를 하겠다고 했다.
1) 일상을 지속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리적으로 많이 고통스러운 상태다. 정확히 일수를 세본 적은 없지만 깊이 잠든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매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상태, 온갖 잔병치레로 몸이 많이 불편하다.
2) 자아 성찰형 인간인데 일에 몰두하다 보니 나를 정리해 볼 시간이 거의 없었고, 이것 때문에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큰 상태이다.
3) 집안 형편과 나 사이에 놓인 "현실 속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4) "진행되지 않는 나의 삶" 그러니깐 욕구가 해결이 되지 않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고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5) 정말 "기획"을 할 수 있을까.
첫 번째 직장에서 1년 8개월 동안 있으면서 가장 절실했던 것은 대화가 통하는 동료와의 접촉, 예리하고 정확한 시선으로 의견을 말하는 대표였다.
두 번째 직장에서 3개월 동안 있으면서 가장 절실했던 것은 가식과 허세와 거리가 먼 대표와 체계적인 일 시스템, 배울 수 있는 환경이었다.
세 번째 직장이 이 모든 바램을 한꺼번에 이뤄지게 했지만 돈이라는 보상이 적었다.
"삶-소비=0"이 아닌 삶을 지향하지 않던가. 그럼 그깟 돈이라는 보상이 적은 것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냐 했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생각보다 돈이 없으니,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설사 만나더라도 풍족한 마음가짐으로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이 작아졌다. 미래 어느 날에 여행을 가고 사랑하는 사람과 한 지붕 아래에서 살고 싶고 고마운 가족과 친구들에게 넉넉한 선물을 주고 싶은데, 그것을 계획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오늘 이 카페에 오면서도 길거리에서 마주친 모든 풍경이 잡을 수 없는 꿈이어서, 바라보는 것이 힘들었다.
하지만 이것 빼고는 나머지는 모두 만족스러웠다. 예리한 의견으로 내가 미처 생각치 못한 부분을 짚어주는 사람들로부터 얻는 깨달음의 기쁨. 새로운 정보를 쉴 새 없이 공유하며 서로의 의견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표현의 기쁨. 상상한 것을 기획해서 그것들을 실제로 구현해내는 과정을 보며 얻는 결과물에 대한 기쁨. 신구 조합으로 균형을 맞추는 기쁨들이 그렇다.
하지만 이 기쁨은 회사 안에서만었다. 회사 밖을 벗어나는 순간, 이 모든 감정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매일 이런 차이를 견디면, 결국 사단이 났다.
두 대표님은 내게 세 가지 제안을 했고 그 중 하나가 오늘부터 약 일 주일 동안 병가 같은 휴가다.
돌아오는 월요일에 산청에 있는 절에 들어 갈 예정이다.
두서 없는 이 글이, 하루 이상 가지 않는 달과 해를 몇 날 본 뒤, 정리가 되었으면 한다.



